:::::교류합시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후원안내
후원회원 신청
CMS회원 신청
후원해 주신 분들
자유게시판
 
  > 회원광장 > 자유게시판
총 623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제목 정수일 소장 기조강연: 나주 국제심포지움 작성자 후원회원
파일 조회수 1300
정수일 소장 기조강연: 나주 국제심포지움
 

나주서 국제심포지엄 개최해,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주최… 교류·공간·콘텐츠 분야 토론

22일 오전 전남 나주시 나주호변 중흥리조트. 연구자들은 물론, 나주를 비롯해 무안, 영암 등 영산강 유역권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학술심포지엄을 경청하고 있었다. "내륙과 바다를 이어주는 영산강은 호남의 구석구석에 물자를 실어 나르고 사람과 물류를 이어준 문명의 통로였습니다."

영산강의 중심도시 나주의 임성훈 시장이 "영산강의 새로운 가치를 인식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영산강의 문명교류와 생활문화사'라는 대주제를 놓고, '문명과 교류' '삶과 공간' '문화와 콘텐츠'라는 세 분야로 나누어 발표와 토론을 했다. '문명과 교류' 부분을 정리했다.

"영산강문화는 해양문화"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은 기조강연에서 "좁은 의미의 영산강문화는 기원전 2세기 마한의 출현부터 기원후 6세기 초 백제의 영유화(領有化)까지의 약 800년 역사를 망라한다"고 보았다. 영산강문화는 '해양문화의 성격이 짙다'고 했다. 예로, 태양과 돌멘(지석)을 숭배하는 양석(陽石)문화를 제시했다. 영산강유역권의 독특한 고분양식인 옹관(고분)이 알 형태를 취하거나 원형문양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런 해양문화는 개척성, 개방성, 외향성, 수용성, 창의성, 진취성이라는 정신적 특색을 간직하고 있다고도 했다.

출토유물중 전통적인 마한계를 비롯해 백제계, 가야계, 중국계 왜계, 동남아계까지도 보이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말해준다고 했다. 전통적인 옹관묘 형식은 유지하면서, 백제식 횡혈석실구조를 수용한 점은 문화의 융합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보았다.

영산강은 유량변동이 심해, 홍수와 가뭄이 잦다. 지류가 많아 홍수조절도 힘들다. 조류 또한 활발하게 드나들어 염생습지(鹽生濕地)인 간석지가 넓다. 이 같은 '엄혹한' 자연환경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산강문화가 탄생했다고 그는 말했다.

전남 나주에서 열린‘영산강의 문명교류와 생활문화사’국제심포지엄에서 린스민(林士民) 중국 전 영파박물관장이‘고대 동아시아 문명과 영산강’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경안 기자
"회진포구는 신문명 관문"

9세기부터 선종(禪宗)불교가 교종(敎宗)불교를 대신하였다. 이 변화의 시기, 중국에 유학한 선승(禪僧)들이 전파자였다. 선승들이 중국으로 떠나거나 돌아올 때 포구였던 (나주)회진(會津)의 사례를 강봉룡 목포대교수는 주목했다.

회진을 경유한 선승들이 지리산에 있는 실상사와 쌍계사에서 안착하였다. 차를 처음 재배한 곳도 지리산이었다. 강 교수는 차의 전래와 장보고의 귀국시점이 828년이라는 점, 그리고 장보고 선승들을 지원해온 점을 관련지었다. 더 나아가 영산강과 서남해가 만나는 해남 화원면 신덕리 일대에서 9세기 전반 장보고에 의해서 조성되었을 것으로 강 교수는 추정했다. 중국의 선진문명의 전래와 창출의 주체는 장보고 세력, 그 관문은 회진포구였다고 추정했다.

영산강에는 또 다른 국제포구가 있었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성시를 이룬 영암 구림촌 상대포구였다. 항로는 '영암-흑산도(-홍도-가거도)-영파(중국) 또는 산동반도'로 이어졌다. 그는 영산강을 '고대동아시아 문명교류의 통로'로 인식했다.

"상업무역문화와 해양문명결합"

린스민(林士民) 중국 전 영파박물관장은 "영산강 유역 문명의 특징 중 하나는 상업무역문화와 해양문명의 결합"이라고 말했다. 이날 차 또는 다기뿐 아니라 교역품으로 비단의 가능성을 언급한 이도 있었다.

그는 교류와 융합의 예로 문화예술품인 동시에 상품이었던 도자기의 문화를 들었다. 강진은 10세기 중엽 중국 도자기술자가 기술을 전수, 전파한 전형적인 예라고 했다. 기술전파로 인한 변혁으로 표현했다. 그리하여 도자기를 수입하던 나라에서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했다.

일본과의 관계도 관심을 끌었다. 영산강 유역권에는 적잖은 왜계 유적유물이 남아 있다. 이것은 빈번했던 접촉과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들. 마한계 도래인들을 비롯해 왜인들의 내왕이 잦았다고 정수일 소장은 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문화가 '일방향 유입'하다가, 한반도의 삼국시대에는 '쌍방향교류'로 전환했다고 보았다. 일본으로 가는 항로는 서남해안에서 출발해 동남해안을 거쳐 우현으로 제주도를 바라보면서 대마도에 이른 후, 규수의 서북방으로 항진하는 코스였다.

다나카 도시아키(田中俊明) 일본 사가현립대교수는 "영산강 유역과 고대 일본의 관계는 상황적으로 혹은 출토유물이나 전방후원분을 통해 교류와 사람의 이동이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고대의 전형적인 고분양식으로, 영산강 유역권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고분(전방후원형고분 또는 장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그는 "백제에 의해 제압되기 전에는 영산강 유역은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교류했고, 신라통일 이후에는 반독립적인 지역으로 다시 개별적으로 일본과 교역을 중심으로 교류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 9. 23

연구소의 활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네요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첫 개설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