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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족사 복원’의 또 다른 이유 작성자 이덕화
파일 조회수 755
‘민족사 복원’의 또 다른 이유
 

 

‘민족사 복원’의 또 다른 이유

이덕화 (소설가, 평택대 국문과 교수)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학문에서부터 정치, 경제 어느 한 부분이라도  한민족으로서의 자존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향상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중화사상에, 근대에 들어와서는 제국주의 침략에 시달리면서 어쩔 수 없는 개방과 함께 서양 중심 사상과 일본의 선진 문물에 우리를 맞추어야만 했다. 또 해방 직후는 미군정 하에서의 미국의 제도와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약소민족이 걸어야하는 당연한 운명인지도 모른다.

 나의 살아 온 길을 통해 한번 반성해보자면, 국문학도인 내가 대학원을 입학했을 때, 제일 처음 시작한 것이 미국의 비평 이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작품에 응용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가장 유행한 비평 이론이 미국의 신비평과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의 『비평의 해부』(The Anatomy of criticism) 였다. 신비평이나 프라이의 이론은 결국 얼마 안 있어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조차 작품의 해석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가 등장함에 따라 곧 비평 분석 방법론으로 잘 적용하지 않았다.

 그 후 1980년대 후반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에 힘입어 민주화가 가속화 되면서 학문적 풍토까지 바뀌고 있었다. 그동안 볼온 서적으로 분류되어 볼 수 없었던 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고, 서양 중심 연구방법론의 일변도에서 다시 주체사상과 레닌의 문학론 중심의 학문풍토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대학원과 박사과정 사이에 10년의 시간적 간극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어리둥절한 체 후배들이 주체하는 스타디그룹에 끼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임화, 김남천, 이기영, 한설야 등 월북 작가를 연구하는 모임과 주체 철학, 레닌의 문학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루카치의 미학 이론 등을 공부하는 그룹이었다. 

 대학원 때 교수들의 수업을 해도 안 해도 그만이라는 태도, 대학원 수업 수강이 밥 먹여 줄 것 같지 않기에 수업을 들어도 안 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허무주의 색채를 뛴 대학원생들의 태도, 이런 것들은 나에게 언제나 암울함과 우울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군사정권에 의한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의 대학 풍토는 활기에 차 있었고, 대학원생들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스타디그룹이 형성되어 있었다. 난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어린 동생 같은 대학원생들과 열심히 스타디그룹에 참석했었다. 그런 덕분에 불온서적 검거 시 내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유포한 장본인으로 지목, 어느 일요일 새벽 집으로 경찰의 기습 점검을 당하였다. 그날 하루 종일 경찰에서 진술서를 작성, 제출한 연후에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대학원 때의 서양 중심의 학문 풍토나 박사과정 때의 사회주의 연구방법론 역시 연구자 자신들의 주체적인 방법론이기보다는 이식 연구 풍토에 대한 수수방관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국문학자가 말한 우리 문학사는 이식문학사에 다름아니다라는 말을 누가 감히 반박 할 수 있겠는가. 연구자의 주체적인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이런 학문적 풍토도 결국 연구자나 연구를 심사하는 교수의 자존감의 상실 내지 주체적 의지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아무 의식 없는 그런 풍토 속에서 인간의 자존감이나 생명에 대한 외경감은 있을 리 없다. 단지 삶의 목적에 맹목적인 추종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생들의 스타디에 적극적으로 참석, 3년 반 만에 김남천의 연구로 김남천 1호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대학 전임으로 봉직하게 되었다. 이런 학문적 풍토는 사회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대학에 근무하면서 새로운 문제에 부딪치면서 생긴 생각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진리는 사회에서나 조직 속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 몇 위, 정치의 민주화를 부르짖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것은 언제나 개인의 자존을 짓밟는 경험이나 열패감 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나 생명에 대한 외경감을 도외시하고 맹목적인 목적 추구의 삶이 만들어 놓은 결과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정수일 교수의 ‘민족사의 복원을 위해서’에서 한 말처럼 우리의 훌륭한 조상 ‘혜초’나 ‘고선지’에 대한 무관심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우리 한 개인의 자존감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과거사조차 스스로 짓뭉개고 있다. 그 뿐인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 국가. 민족 모든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모는 것을 업수이 여긴다. 그러다 보니, 타자에 대한 배려마저 없다. 일본의 제국주의 당시의 무지막지한 횡포를 그렇게 비판하면서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타민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것은 얼마 전 사망한 대통령을 통해서도 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기 때문에 민족, 국가에 대한 업수이 여기는 마음이 결국 자살로 마감을 한 것이다.

 개인의 자존감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타인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외경감이다. 우리 민족사의 복원을 통하여 많은 훌륭한 조상을 통하여 스스로가 훌륭한 민족의 일원이라는 자신감의 회복이 필요하다. 그것을 통하여 민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경감과 모든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매일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주위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통하여 스스로가 인간으로 대접을 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럴 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자신이 소속한 사회와 국가에 대한 헌신이 따를 것이며 민족사 북원도 가능할 것이다. 정수일 교수를 통해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되는 것은 학문적인 태도나 민족사 복원을 위한 업적도 소중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정수일 교수의 삶의 자세에서 이런 인간에 대한 존경심과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외경심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것은 현재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스스로를 확인하고 알게 된다. 과거에 지녔던 것, ‘민족사 복원’은 바로 우리를 제대로 아는 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지닌 것,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외경심과 존경심을 회복한다면 우리의 삶은 살만한 것이 될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속의 선덕여왕 이야기
연날리기와 살아 있는 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