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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명과 또 다른 문명 작성자 김 승신
파일 조회수 649
문명과 또 다른 문명
 

문명과 또 다른 문명

                                                                                                        김 승신 (방송작가)

 

 TV 다큐멘터리가 20%를 넘는 시청률을 올리는 것은 방송가에서 기적과 같습니다. 외부로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밀려 시청자에게 외면받고, 내부로도 해가 거듭될수록 방송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의 다큐멘터리 지원이 줄고 있는 실정이라 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실정에서 지난 1, 2월 mbc에서 방송한 ‘아마존의 눈물’이 시청률 20%를 넘은 것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3D 영화 ‘아바타’는 천 만 관객 동원으로 영상시장의 확대라는 서막을 알렸습니다.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3D 업체의 주식이 급상승하고, 유명감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3D 제작을 이야기합니다. 정부조차도 3D산업에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나서니,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영상시장을 뒤흔든 셈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수선스러움과는 달리 실제로 3D 영상마켓의 정착은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합니다.

 

‘아마존의 눈물’ 과 '아바타‘ 두 작품은 이런 전무후무한 흥행기록과 더불어 문명과 원시의 대립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유사점을 지닙니다.

관중들은 현재 문명의 혜택을 향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을 본 후 이구동성으로 원시자연의 편을 들었습니다. 발전이란 명목 하에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개발하는 것은 곧 자연을 해치는 것이라 인식했으며, 아마존 밀림과 판도라가 그런 위험에 처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을 만든 제작진은 발전이 없는 원주민 조에족의 삶에서 우리보다 더 문명스러운 모습을 발견했다고까지 말합니다.

문명! 그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평가하며 문명과 원시로 나누고, 나아가 다른 한 쪽의 인위적인 발전을 강요하는 걸까요.

문명엔 여러 가지 의미들이 많습니다. 어느 것을 딱 꼬집어 이야기 할 순 없겠으나 일반화된 사전적 의미로 문명은 ‘원시, 미개와 대응하는 진보된 인간생활의 총체이며,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구조적인 발전‘ 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문명은 민족과 국가를 초월해 보급되어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반면 문명과 상대적 의미의 미개는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원시와 상대적 개념의 문명이란 낱말은 18세기부터 쓰이면서, 유럽과 비유럽의 차별성, 혹은 문명과 야만에 차별을 두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태생적으로 차별적 의미를 지녔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그 기준 역시 한 쪽의 입장에서 세운 일방적인 것이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한때 사람들은 문명이전을 무질서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선 ‘인간 사회가 형성된 이래 무질서한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 다시 정의 내려지고 있습니다. 고로 미개 사회도 무질서의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문명의 세계라 받아들인 셈입니다. 또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미개사회 혹은 원시사회도 문명처럼 나름대로 국가나 민족을 초월해 보급되었으며, 사람들은 그것에 동화되어 갔습니다.

 

미국 작가 프레드릭 터너는 일찍이 유럽의 신대륙 개척에 관련한 문헌들을 살펴보면서 색다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문헌엔 신대륙의 장대한 풍광을 보고 경외감을 표현하거나, 정신, 육체적으로 야생에 매료되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가 공개적으로 기술된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야생을 부정적으로 언급하고, 야생의 유혹에 굴복한 사람들은 신의 보복이 닥칠 것으로 예언하며 경멸했다고 합니다.

이 점은 한 때 우리들도 학습을 통해 익숙하게 경험했던 일들입니다. 야생을 편리라는 이름으로 개발하면서, 야생 본연의 모습에 대해선 교육받지 못했던 과거가 기억납니다.

어쨌든, 프레드릭 터너는 문헌에 나와 있지 않은 역사의 또 다른 진실로 수많은 이주 개척민들이 자연에, 인디언에 동화되어 갔다고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미지의 제국을 찾으러 떠났던 코르테스(1485-1547 스페인 정복자, 아즈카제국을 멸망시키고 스페인 식민지를 건설함), 나르바에스 (1470-1528 스페인 정복자,플로리다 총독), 월터 롤리(1552-1618 영국 군인이자 탐험가) 원정대들은 미 대륙에 수 백명의 정착민들을 남기고 유럽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 해 그곳을 다시 찾았지만 정착지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원정대는 그들이 당연히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착민들은 모두 인디언과의 동화를 통해 생존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유럽 이주민들이 대규모로 몰려온 이후에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인디언은 유럽인들이 보기에 미숙한 존재이고, 보잘 것 없고 ,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미개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주민들은 인디언을 따라간 것일까요. 이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요?

 

프랑스 박물학자인 크레브쾨르(1735-1813)는 신대륙의 주변엔 항상 울창한 숲이 있었고, 숲 속에서 영위되는 삶은 묘하게 매력적이여서, 이주 유럽인들이 자랑하는 문명 속의 삶보다 훨씬 우월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는 또한 수천 명의 유럽인이 인디언이 되었지만 자발적으로 유럽인이 된 원주민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는 문명의 혜택을 받았기에 밀림의 원주민보다 행복하고 안락하며 위생적으로 살아왔다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원시인들이 왠지 문명인보다 영양적으로 더 부족했고, 병에 잘 걸렸을 것이며 , 불행했을 것이라고 예단합니다. 하지만 어디도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풍요로운 현대인에 비해 원시인의 퇴행성 질환 발병율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제 3세계 사람들처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일도 없었다고 인류학자 마크 코헨은 말합니다. 또한 ’구석기시대의 치료법’이란 책을 펴낸 하바드대 의사인 보이드 이턴은 농경시대 이전에 인류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렸으며 오히려, 영향섭취나 운동성에서 문명인의 생활방식보다 월등하게 우수했다고 지적합니다.

 

역사가 증명했듯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전달되어 온 문명은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문명이란 사람들이 세운 수 많은 단어의 정의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문명이 미개의 반대 의미일 수 없으며, 문명이 발달되었고, 원시가 뒤쳐졌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아마존의 눈물’ 취재팀은 촬영 내내 경험해보지 못한 자연환경과 싸우며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작진은 행복했다고 합니다. 나이든 사람부터 고아까지 모두 더불어 먹여 살리는 조에족을 보면서, 이들만큼 잘 웃는 부족도 못 봤다고 말합니다. 반면, 문명화된 부족은 오히려 취재팀을 경계하고 제작진이 가진 것을 욕심내고 밝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기준으로 하면, 조에족이야말로 가장 문명화된 부족이 아닌가 하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비록 공상의 세계였지만, 우리는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에게서도조에족과 같은 얼굴을 보았습니다. 문명과 비 문명을 떠나 그것이 바로 궁극적으로 관중들이 두 작품에 환호했던 이유며, 모든 인류가 바라는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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