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합시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편집위원회
게재원칙
논문투고 신청
학술지 검색
소식지
주간칼럼
출판번역
 
  > 출판간행 > 주간칼럼
총 69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제목 [제11화] 종교의 해방공간 작성자 김성훈
파일 조회수 559
[제11화] 종교의 해방공간
 

타밀나두주-까냐꾸마리 -인도의 최남단; 종교의 해방공간

 
 

까냐꾸마리Kanyakumari

 

 

10여 일간의 타밀나두주 힌두유적 답사를 끝으로 마두라이에서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여 인도 대륙 최남단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12월이지만 그동안 더위와 싸워가며 힘든 여정이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서 힌두쿠시 산맥이 이어지고 끝없이 펼쳐진 전원엔 짙푸른 야자수와 바나나나무가 나그네의 심사를 어루만지고 있다. 창가로 스쳐가는 초옥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푸른색과 녹색의 향연이라라까 도심의 오염과 번잡함을 떠나 신선한 자연을 대하니 또 다른 감도으이 물결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왜 이 넓고 평화로운 풍요의 대지를 떠나 도시로 향하는 것일까? 먹고 살며 사랑하는 것은 이곳이 더 풍족할 터인데... 그들의 도시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까냐꾸마리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산과 바다 그리고 논밭이 어울려 지상의 낙원과 같은 정경을 연출한다. 동쪽의 벵골만과 서쪽의 아라비아해가 이곳에 모여 인도양과 조우하는 곳으로 바다건너 보석의 섬 스리랑카가 있다. 인도에선 유일하게 바다에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인데, 파라다이스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대항해시대 유럽의 범선들이 몇 달 동안 파도, 열병과 싸우며 도착한 이곳에서 생존의 기쁨을 만끽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환호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스, 로마의 역사서에 이곳을 '성스러운 고모리'라고 기록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꾸마리Kumari는 예지 능력을 가진 처녀 신을 한국의 무당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에서는 신의 배우자로 신의 힘인 샤크티가 소녀의 육체를 빌어서 세상에 나타난다고 믿고 있다. 꾸마리 신앙은 이도 북서부 펀잡 지방과 네팔에서 성행하며 그들이 믿고 있는 꾸마리 신은 현존하여 좀 복잡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뜻밖에 이곳 인도 최남단에서 만난 꾸마리 신은 그 기원은 알 길이 없으나 힌두사원인 꾸마리 암만사원이 해변을 바라보는 도심 가운데 있으며 신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상 어느 곳이나 바다에 면한 도시는 내륙보다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 힌두교가 만연한 이 지역 역시 기독교가 밀려오며 대규모 천주당과 각종 교회당이 시내 곳곳에 건립되어 신도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성업 중이다. 새벽엔 교회종소리를 시작으로 찬송가 확성기 소리가 바람에 울려 퍼지고 해 뜰 즈음이면 이슬람 살라 외침 소리가 더하여 독특한 정서를 간직한 곳이다.

 

 

교회주변 비교적 청결한 골목길을 걷다보면 대문이 모두 개방되어있고 방안에는 예수님 초상과 성모마리아상이 보인다. 왠지 이들의 얼굴엔 힌두교인과 다른 활력이 넘치고 이웃과 교류도 활발한 듯하며 낯선 우리에게도 미소를 보여준다. 움명을 숙명으로 생각하는 힌두인과 노력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충만한 기독교인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해변에 있는 고딕 건물인 란솜 천주당 The Church of Our Lady of Ransom의 안내판에 예수제자 도마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글귀가 있고, 성당내부에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성가대석과 설교단 그리고 신도석이 보인다. 도시에 비하여 성당의 규모가 너무 크다. 상당한 규모의 재정이 투입되었을 이 성당의 지원자는 식민지배자나 교황청일 것이다.

 

 

이곳에서 뭄마이가지 서남부 해역은 15세기 경 포르투갈을 선두로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거의 500년이 넘는 침탈사로 얼룩진 곳이다. 그들이 앞세운 선교사의 전리품인 양 곳곳에 유럽형식의 교회와 성당이 남아있다. 이제 서구의 천주당도 인도의 명물이 되어 동방의여행자에겐 또 하나의 흥미로운 낭만거리다.

 

 

그러나 이곳의 진정한 명물은 앞바다 작은 섬인 비베카난디가 명상에 잠긴 곳이다. 비베카난디는 영국 지배기에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힌두 지도자 중 한사람이다.

 

 

그는 유명한 라마크리슈나(1836-1886)의 제자로 그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고대인도 경전인 베다로 돌아갈야 한다고 역설하고 카스트 철폐를 주창하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비베카난디 섬에는 그의 기념관이 세워지고 거대한 인물상이 바다가운데 서있는데, 옛 타밀의 시인인 티루발루바Thriruvalluvar의 동상이다.

 

기원 후 800년경 하층민 출신인 티루발루바는 유구한 힌두교의 역사에서 본격적인 개혁운동이 시작된 기원전 6세기의 마하비라와 석가모니를 이은 개혁가로 꼽히며 타밀어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신의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 받는다고 역설하였으며 그는 시를 통하여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만이 유일한 선물이다. 나머지는 모두 주고받을 뿐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바다가운데 우뚝 선 그의 동상은 인도의 자유의 여신상이라 불리는데, 눞이 133피트로 연 인원 5000명이 투입되어 2000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일출과 일몰시 붉게 물든 바다가운데 우뚝 선 인물상과 기념당은 이국적이며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인도의 사원과 조각은 근세의 작품에서도 장중함이 느껴진다.

 

 

바다 끝 바위위에 간디의 화장된 유해가 모셔졌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석조 사당에 올랐다. 간디와 비베카난디, 그리고 티루발루바가 인도 최남단 바닷가에 함게 모여 있다. 그들은 모두 인도와 인도사람을 사랑하였고 지금의 인도인들은 그들을 따르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힌두교가 진정 신을 위한 종교가 아닌 인간을 위한 종교로 변하고 있다. 창업보다 개혁이 어렵다고 한다.

 

해변 힌두신도의 목욕장인 가트엔 신도들로 하루 종일 북적인다. 이곳은 해수로 몸을 정화하고 기도하는 곳인데, 일출시간에는 힌두신도들이 바다에 운집하여 두 손 모아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기도하는 장면이 아름답다. 기도중인 이들을 향하여 어디선지 성당 종소리와 이슬람 기도시간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가 울리고 있다. 인도대륙 남쪽 끝에서 세계 3대종교의 성찬이 이어지며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정경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힌두교의 성지에서 대륙에서 내려온 이슬람교와 바다에서 전입한 기독교가 꾸마리의 은총으로 종교의 자유를 만긱하며 인도의 미래를 다투고 있다.

 

 

[제10화] 물고기 눈
[제12화] 진보의 실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