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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2화] 진보의 실험장 작성자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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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진보의 실험장
 
까러ㅡ나타카주- 께랄라주 - 붉은 깃발과 기독교가 만연한 진보의 실험장
 
 

께랄라주

 

12월 6일 눈을 뜨니 새벽 밤 3시, 한국의 아침시간, 아직도 관성 때문인지 잠을 뒤척인다. 몸에 밴 습성은 무섭다. 살아온 일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현재 나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또 다른 미래의 나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아마도 불가에서 이야기 하는 윤회는 유전자가 활동하는 과정 즉 삶 속에서 태와 업을 쌓아 가는 것을 이르지 않을까? 날이 밝아오자 이 지금의 유전자가 미래의 인류를 결정한다는 사실과 인간의 행위, 신의 역할 등을 생각해보며 파도치는 해변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바람과 맑은 공기 그리고 주변의 산들이 차츰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생에 다시 마주하기 힘들 것이다. 3일간의 충전을 끝낸 후 다시 짐을 꾸려 북으로 향한다. 인도에 도착한 지 12일 만에 타밀나두주를 벗어나고 있다. 한국인에게 인도대륙은 크다. 께랄라주는 인도에서 비교적 작은 주에 속하는 데도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한 면적에 인구는 약 4천만이다. 동쪽엔 서코트 산맥이 이어지고 서쪽으론 아라비아해가 면하여 농토가 적은데, 인구밀도는 높아 인도에서 가난한 주에 속한다. 도로변 곳곳에 대형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깃발에 옛 소련연방의 국장인 낮과 망치가 교차하는 인장이 그려졌는데, 지구상에 아직도 이런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심스럽다. 이 지역 사람은 남한보다 북인 더 친숙한 듯 코리아하면 남이나 북에서 왔느냐고 되물어 우리를 당혹케 하며 이지역 국제뉴스는 북한의 동정을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50년 전의 시계가 이곳에는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 인도의 네루, 유고의 티토, 이집트의 낫세르와 북한의 김일성이 제 3세계 지도자로 명성이 높은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가난 때문인지 아직도 자유보다 평등의 가치가 소중한 곳이다.

 

트리반드륨은 께랄라주의 주도로 인구 약 100만에 가까운 큰 도시다. 그러나 도시는 고층건물은 보이지 않고 시골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다. 남단에서 이곳 까지 약 80km 이차선 도로변은 주 전체가 도시인 양 가옥과 상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도심은 비교적 깨끗하고 거리마다 신호등이 교통을 통제하는데도 택시와 릭사가 불만 없이 기다리며 운행하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신기한 모습이다. 참고 기다리는 길이 더 빠르다는 사실을 이 도시는 깨달은 것이다. 종교적인 깨달음보다 일상에서의 깨달음이 현세에선 더욱 행복을 가져다준다. 버스타기 위하여 줄서서 기다리는 인도인을 보며 이곳의 행정가는 뛰어난 개혁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술하였지만 인도는 교통과 쓰레기 문제로 여행객을 괴롭히는데 서구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서쪽 도시부터 질서가 잡혀가고 있는 모습니다. 이 도시는 철도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는데, 북은 신시가지로 유럽풍의 건물이 즐비하고 남쪽은 번잡한 구시가지에 사원과 왕궁이 있다. 북쪽은 식민 지배자의 구역이고 남은 원주민 즉 피지배자의 땅이다. 다음날 릭사를 이용하여 북쪽의 공원을 찾았다.

 

공원에는 동물원과 주립박물관, 미술관 등 볼거리가 의외로 풍성하다. 열대우림을 그대로 옮겨온 듯 도심의 동물원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각종 동물들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박물관은 영국 통치시기에 건립되었는데 인도전래 목조 가옥을 되살려 검은 색조의 목조 프레임과 붉은 격자 벽이 어울려 장중함과 세련미가 넘친다.

 

각종 부재마다 상상속의 동물과 신상을 조각하고 실내 천정은 길상문이 가득하여 건물이 하나의 예술품이다. 박물관 뒤로 숨어있는 듯 숲속에 일반 가옥처럼 생긴 작은 미술관이 보인다. 이 지역 근현대 작가의 작품이 일이층에 나뉘어 빼곡히 전시되고 있는데, 조상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기위한 시도가 돋보인다. 그러나 인도는 세계 유래가 없는 종교 미술의 보고로 장구한 세월동안 누적된 조상들의 아름다움을 현대의 화가가 감각만으로 재현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종교미술은 지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해야 하며 작가는 신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곳에서 릭샤를 타고 한 시간쯤 남으로 이동하면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변, 꼬알람 비치가 있다. 분명 야자수 나무와 모래사장 그리고 밀려오는 아라비아해의 파도는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지만 그것뿐 간단한 식사와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다.

 

다음 일정은 버스 편으로 6시간 쯤 북쪽에 위치한 께랄라주 최대의 항구도시 코치다. 처음에는 트리반드륨과 코치사이에 유명한 백워터 크루즈를 이용하여 북상하기로 계획하였으나 무거운 짐을 들고 승하차와 승선을 거듭하는 일이 번거롭고 힘들 것 같아 포기하였다. 인도의 버스는 유리창 대신 철제 셔터를 설치하여 멀리 보면 장갑차처럼 생겼다. 무더운 날시에 차안에서 고구마 신세가 될 생각을 하니 아찔하였으나 철판이 강열한 태양열을 차단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도전과 응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버스 차장과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코치 버스스텐드를 지나친 바람에 우리는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에 양 손에 배낭을 들쳐 메고 한 시간 이상 걸어야 했다. 인도인들이 영어를 모두 잘하는 것은 아니다. 배낭여행에서 방심은 꼭 대가를 요구한다.

코치는 현대화된 매우 활기찬 도시다. 고대로부터 동서 무역항으로 발달했으며 근세에도 포루투갈과 네덜란드, 영국 등 각축장으로 유명한 곳으로 대형 화물선이 정박해있고 인도 해군기지가 있다. 내륙 신도시에는 각국의 다국적 기업의 공장과 사무실이 즐비하여 국제적인 면모가 들어나는 곳이다. 우리는 현지인과 함께 관광선에 승선하여 바다로 향하였다.

지저분한 선창과 달리 십 여 부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니 상큼한 공긱가 밀려오며 각종 물새들이 고기 잡는 모습이 보인다. 섬에는 유명한 중국식 어망 십여 채가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석양과 해변의 야자수를 배경으로 고식의 대형 어망으로 고기 잡는 풍경은 아름다운데 지금은 관광용인 듯 실속은 별로 없어 보인다. 명나라 시절 광동성 중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고기 잡던 기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내력이 궁금하다.

섬에는 인도최초의 교회인 성 프란시스코 교회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교회는 16세기 경 포르투칼 식민지시절에 건립되었고 유명한 동방의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묻혀있다고 전한다. 교회건물 외관은 유럽 등 남미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포르투칼 식민지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형식이다. 세계 곳곳에서 그들이 정복지를 기념하는 드쇼 끝없는 그들의 야욕에 여행객은 마음이 편치 않다. 역사는 변하는 법 현재 유럽위기속의 포르투칼은 백척간두의 벼랑에 서 있다.

 

여행 중 인도의 역사와 외부의 침략자 그리고 그들의 흔적인 건조물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아리안과 드라비다의 문명이 인도의 양대 축이라면 후대에 전입된 이슬람과 유럽의 문명은 분명히 이질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슬람 셀겨이 인도에 건설한 타지마할과 왕궁, 성채 등이 보여주듯 인도인과 인도자연과 융합이라는 새로운 기원을 쓰고 있는 반면, 유럽에서 수입된 그리스 고전과 중세의 고딕은 아직도 이 땅의 이방자처럼 보인다. 결코 세월의 길고 짧음이 문제 일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천년 세월의 간다라미술에서도 인도적 순순한 아름다움은 찾을 수 없다면 종교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피동이며 익숙함이며 친숙함이 아닐까?

 

그러나 인류가 유구한 세월을 사는 동안 지구 어느 곳에도 주인이 다로 존재할 수는 없는 법, 문명과 문화의 차별은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현대의 인도인은 오늘도 곳곳에서 자기 집 건물 기둥에 코린트식 주두를 흉내 내기 위하여 콘크리트를 쏟아 붓고 있다.

 

오늘로 우리의 여정이 반을 돌아서고 있다. 자축 겸해서 고급호텔에서 만찬을 즐기며 성공적인 답사를 회상해 본다. 마하발리뿌람의 조각과 깐치푸람의 석조물들 그리고 깐야꾸마리의 아름다운 자연은 밤 세워 들이키는 맥주 안주로 손색이 없다. 인도는 술이 인색한 곳이다. 일슬람은 금주 문화로 유명하며 불교나 힌두교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먹지 않고 있다. 여행자를 위한 술집은 호텔의 지하 등 특별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데, 술의 종류도 거의 맥주로 한정되며 가격도 비싼 편이다.

세 남자 중 한분께서 향수병에 걸렸는지 집 타령이다. 출발 전 부터 우리는 갈색한복에 염주를 착용하고 머리를 삭발하기로 약속했다. 마치 속세를 떠난 떠돌이이 승려 행세를 해보는 것이다. 이제 우리 나이를 스스로 감당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60년을 채우기 위해 살았다면 지금부턴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마지막 육신마저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남은 생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불가의 네 가지 고통인 생노병사 중 세 가지 고통이 이미 곁에 와있다는 사실이다. 힌두교에서는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 부모로부터 혜택 받고 배우는 시기와 부모로써 부양의 의무가 주어지는 시기, 세 번째는 신계 쉬의 하여 신을 배우고 마지막으로 자연 속에서 생을 마감할 때 까지 떠도는 삶이 그것이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제11화] 종교의 해방공간
[제13화] 새로운 양식의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