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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3화] 새로운 양식의 창조 작성자 김성훈
파일 조회수 682
[제13화] 새로운 양식의 창조
 
까르나타카주- 마이소르 - 호이살라왕조의 힌두건축과 미술; 새로운 양식의 창조
 

마이소르

   

우리는 까르나타까주의 첫 번째 답사지인 아이소르로 향했다. 까르나타카주는 남인도 힌두유적기행의 필수코스로 타밀나두주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판디야, 촐라왕조의 타밀나두주와 호이살라, 찰루키야,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유적이 있는 까르나타카 주는 남인도 힌두교 미술과 건축의 미적, 양식적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 중 처음으로 기차편을 이용하였는데 마이소르는 벵갈루르 일박후 다시 버스 편으로 4시간 쯤 이동하여 목적지까지 가야했다. 11시간 쯤 걸린 기차여행은 서해에서 인도내륙을 관동하는 노선으로 데카고원 남쪽 평화로운 산과 논밭사이를 산책하듯 기차는 서행하고 있다. 인도내륙의 전원은 풍요롭다. 각종 밭작물과 화회기가 무성하게 자라고 소와 양의 무리가 평화롭게 노닐고 있다. 동네어귀엔 노인들과 어린아이가 함께 어울리고 아낙들은 멋있는 사리를 감아 입고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힌두교의 성물인 소가 밭에서 쟁기를 끌고 있는데 시바신의 수호자이며 탈것인 살아있는 난디가 이곳에서인간을 위하여 노역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간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위험한 사원담장 위나 어두운 사당보다 이곳이 행복해보인다. 이 녀석들에게 인도는 극락의 땅인 셈이다. 인도에선 윤회의 끝이 소가 아닐까?

 

가족단위 여행객으로 가득 찬 기차는 서로 대화를 즐기며 웃고 떠들며 지루할 겨를이 없어 보인다. 낯선 우리에게도 음식을 권하며 관심을 보여주는데, 여행 내내 가는 곳 마다 현지인의 따뜻한 시선에서 우리는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코리아에 대하여 남북분단과 현대, 삼성 등 기업체외엔 특별한 지식은 없어 보이며 단지 서양인과 다른 제3의 외모에 흥미를 느낀 듯하다. 이것이 한류다. 인도에서 배낭여행 족 대부분은 유럽인이지만 유독 우리에게 보여준 호의는 특별해 보이며 우리나라의 국운이 흥성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들은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며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하여 줄을 선다. 늦은 나이에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곳, 그런 곳이 인도다.

 

인도 최고의 IT도시 벵갈루르의 첫인상은 깨끗함과 분주함이다. 이곳에서 인도의 미래가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다. 도로는 잘 구획되고 교통시설이 훌륭하며 사람들은 스마트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영리하고 빠르게 돈을 좆아 움직이는 모습이 여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인공위성과 핵무기 그리고 카스트와 빈곤이 공존하는 나라 인도는 긴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다. 이천년 전 부터 이곳의 불교를 받아들인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전래의 유고, 도교와 협력과 경쟁을 통하여 국가의 긍정적 에너지가 도니 반면 바라문과 베다로 회구한 인도대륙은 아직도 만신의 늪에서 허덕이며 꿈과 현실사이를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청렴하고 유능한 엘리트가 10억 인구를 각성시킨 반면 영국 200년의 지배기간 외세에 의존했던 인도는 통합과 개혁의 동력이 아직도 미치지 못한 모습이다. 인도와 중국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의 고봉은 두 나라를 단절시켰고 역사와 문화가 서구만보다 이질적이다.

 

 

마이소르는 데칸고원 최남단의 도시로 해발 770m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사라센 양식의 거대한 마하라자 왕궁을 중심으로 펼쳐진 도시는 아름답고 기온이 사계절 쾌적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버스 스텐드에서 짐을 챙겨 릭샤를 타고 여행안내서에 소개된 호텔로 직행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에 안내서에서 소개한 동명의 호텔이 3개나 되어 한동안 도시를 배회하며 계획에 없는 시내 관광을 하게 되었다.

 

마이소르왕국시절 영국과 30년 전쟁 끝에 1799년부터 영국령 번왕국으로 복속한 경력 때문인지 시내 곳솟에 서구 식민지 풍 건물과 인도-사라센 양식의 왕궁이 즐비하여 역사도시(?)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까르나ㅓ타카주의 작은 도시지만 17세기경에은 마이소르 왕국의 수도로 벵갈루르 지역을 포함한 강대한 세력을 자랑 하였다고 한다. 마이소르 왕국은 비자야나가르 왕국(1336-1649)의 힌두교 왕통을 계승하였으나 1761년 이슬람교 양식적 기원이 정치사에 있음이 짐작된다.

 

 

이제 본격적인 힌두사원 답사를 준비할 차례다. 예정된 답사지 세 곳 모두 마이소르를 중심으로 약 3시간 거리에 분산되어 2박3일 정도 렌트카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차는 허름하였으나 오십대로 보이는 기사가 성실하고 유머가 넘쳐 여정 내내 차안에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시대와 민족을 초월하여 나이먹은 남자들의 동병상련은 일치하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주제는 주로 퇴출, 힘센 마누나, 머니, 정력 그런 것들이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솜나르뿌르로 향하였다. 솜나르뿌르는 마이소르에서 동쪼긍로 26km 떨어진 작은 마을인데 이곳에 있는 케샤바사원Keshava Temple(1268)은 베룰르의 첸나케사바사원(1117), 할레비브의 호이살레스와라 사원(1121)과 함께 호이살라 왕조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호이살라 왕조는 1006년 남인도 데칸고원에 처음 등장하여 초기에는 후기 찰루키야 왕국과 촐라왕국사이의 작은 지방정권으로 출발하였으나 13세기 전반 찰루키야왕조의 제후였던 호이살라가의 비슈누바르다나왕 시기에 본격적으로 주변에 세력을 떨치며 촐라왕조까지 위협하였다. 그러나 14세기 전반 북쪽 이슬람의 침공으로 멸망하며 남인도 지역은 비자야나가르 힌두왕국으로 재편된다.

 

호이살라 왕조의 건축과 미술은 왕조의 존속기간이 약300년으로 비교적 짧지만 북방과 남장적 요소를 결합한 데칸지역의 베사라 양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베사라는 중세 인도의 건축서인 『마나사라Manasar』 에 북쪽의 나가라 양식과 남인도의 드라비다 양식과 함께 제 3의 양식으로 언급되는데, 건축과 조각기법이 인접한 촐라왕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 그 기원과 전개부분에 대하여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잇다.

 

케샤바사원은 호이살라왕조의 나라신하3세 시절 1268년에 왕의 신하인 소마가 건립하였다. 영역은 53m x 65m로 동쪽에 사원의 입구가 있고 경내에 들어서면 64개의 작은 사당이 있는 회랑에 둘려싸인 아담한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사원평면은 별 형태로 기단부가 높으며 하나의 비마나를 후면 3개의 시카라가 공유하는 형식이다. 만다파는 단층으로 실내는 모줄임 천정과 열주로 구성되고 시카라는 북방형식인 옥수수형 탑으로 내부에 각각 성소를 두고 있다.

 

 

 

수평 층으로 이루어진 기단부와 만다파, 비마나외벽은 사아세공을 연상케 하는 석 조각으로 마감하였는데, 하부는 주로 신성한 동물이나 길상을 장식하고 상부에는 당대의 전쟁이나 일상의모습들, 그리고 각층마다 신들과 라마야나의 장면, 카마수트라의 장면 등을 빼곡히 조각하여 보는 이를 감탄케 한다. 내용과 소재가 매우 풍부하며 신들이 이야기는 물론 일상의 소재가 망라되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커 보인다. 파도치는 바다와 불속에서 수도하는 소신의 장면은 특이한 소재며, 인물과 동물조각은 현실적이며 활력이 넘치는 반면 신상은 비교적 경직된 표현을 보여주고 잇는데 지역적 특징으로 보인다.

 

실내에 들어서자 창호사이로 내리쬐는 빛살에 어둠이 차츰 익숙해지며 검은 색조의 거대한 기둥과 깊은 곳 성소에 모셔진 신의 형체가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한다. 항아리 형태의 기둥은 단면이 다른 디스크를 싸아올린듯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 이 사원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특히 꽃 봉우리를 조각한 중앙 천정과 외벽의 창호는 목 가구를 번안한 것으로 호이살라왕조 석졷각의 놀라운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두 시간 쯤 사원을 둘러보고 행복감을 느꼈다. 촐라의 대규모 사원은 왕과 시바신의 위대함의 상징이라면 호이살라의 사원들은 규모는 작지만 석재로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할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사원 밖 계단에 서구에서 요가 수행 온 듯 남녀 3쌍이 재잘거리며 가끔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사원과 현대의 젊은이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보인다. 차가운 석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 사원의 장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밤에는 내일 또 다른 호이살라의 명작인 벨루르와 할레비브를 꿈꾸며 일찍 잠들었다.

 

 

 

[제12화] 진보의 실험장
[제14화] 새로운 양식의 창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