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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5화] 세계최대의 고마테스와라상과 유적들 작성자 김성훈
파일 조회수 1009
[제15화] 세계최대의 고마테스와라상과 유적들
 
스리벨라골리 - 자이나 교도들의 위대한 위업; 세계최대의 고마테스와라상과 유적들
 
스라바나벨라골라 Sravanabelagola

 

 

 

유명한 자이나교 사원의 도시 스라바나벨라골라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2차선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 보면 멀리 산 정상에 거대한 석상이 보인다. 가까이 갈수록 형체가 더욱 선명해지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신 나신이 들어나고 있다.

 

 

자이나교의 위대한 고마테슈와라상이다. 남인도를 여행하다보면 가끔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는데, 함피의 낯선 풍경들, 탄조르의 거대한 비마나와 마두라이의 우주선을 닮은 고푸람 등이 그것이다. 비마나와 고푸람은 석조사원이지만 이곳은 석산 정상부를 통째로 조각하여 높이 18m의 거대한 신상을 만들었다. 높이 143m의 바위산이 신의 대좌인 셈이다. 오래된 칸나다어 비문에 의하면 이 석상은 98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개의 바위로 만들어진 석상 중 세계최대로 꼽힌다.

 

스라바나벨라골라는 현재 한적한 마을이지만 12년에 한번 씩 열리는 자이나교 최대축제인 마하마스따까비쇠까 기간에는 백만 명이 모인다고 한다. 큰 사각형의 인공 연못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바위산이 있는데 고마테슈와라상이 있는 남쪽의 높은 산이 인드라기리이고 북쪽의 낮은 바위산이 찬드라기리라고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에 마우리아 왕조의 찬드라 굽타왕이 스승으로 받들던 바그완 바드라바후와 함께 이 마을에 왔다고 전한다. 찬드라기리에는 BC3세기에 찬드라 굽타의 손자인 아쇼카왕이 세웠다고 전하는 자인교 사원인 차드라굽타 바스띠 사원이 있다. 이와 같은 기원전의 스토리가 곧증된다면 남인도 최초의 종교유적이다. 가까운 스리랑카 섬에 기원전 후의 스투파와 불타와 관련된 기사들이 등장하는데 중간 경로에 위치한 이곳에 찬드라 굽타시기의 유적도 가능하다고 본다.

 

신발을 벗고 우선 인드라기리에 오랐다. 바위산을 깎아 만든 계단을 한참 오르다 보면 자인상이 안치된 소규모 사당과 몇 개의 탑이 보인다. 사당에는 스리 아디나타 티르칸타라 좌상을 모셨는데, 검은 색조의 돌을 연마하여 광채가 번뜩인다.

 

 아디타나는 자이나교의 초대 티르칸타라로 아들인 고마테슈와라가 주인공인 이 산의 입구에서 말없이 선정에 몰두하고 있다. 자신보다 위대한 티르칸타라로 평가받는 아들의 모습을 지키는 골육의 정이 느껴진다. 정상부 성벽 넘어 거대한 고마테슈와라가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트야가다 기념비를 둘어보고 몇 개의 계단을 더 오르면 본전의 관문을 지나 거대한 성벽이 나타난다. 성은 높고 견고하게 축조되었으며 내부 벽면을 따라 곳곳에 각종 동물문양과 기괴한 인간의 모습을 부조하였는데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유며감각이 넘친다. 돌을 다음어 경건한 신전을 짓는 노동자에게 이와 같은 모티프의 조각을 허용한 지배층의 여유가 느껴진다.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바위산을 쉬지 않고 올라온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함인지 조각들은 퍼즐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며 순례자의 미소를 유도하고 있다.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더욱 천천히 성벽을 따라 걸으며 천 년 전의 망치와 치즐이 전부인 수천 명의 석공들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먼저 산 아래부터 614개의 계단을 조각하여 산 정상을 향하여 길을 내고 정상에 거대한 석상을 만들기 위하여 이곳에서 최초의 망칠를 가격하였다. 쪼아낸 한 조각 석편은 신호로 운집한 석공들은 망치로 바위를 두르려 흰 돌먼지가 구름처럼 산 정상을 덮고 있다. 원래 높이 170m 쯤 되는 바위산을 깎아 140m로 높이를 낮추는 기가 막히는 역사다. 한 길을 파 내려가는데 아마 얼마쯤 세월이 소요되었을까? 인간의 집요한 노력으로 드디어 거대한 신상이 머리부터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가까운 곳에서는 그의 얼굴을 짐작 할 수도 없이 앞산 찬디라기리를 수천 번 오르내리며 멀리서 신의 얼굴을 확인하며 더욱 조심스럽게 심혈을 기우려 조각하였을 것이다. 세계최대의 수식어가 붙기는 지난한 일이다. 그들은 981년에 이 거대한 신상을 완성하고 이후 12년마다 천년을 이어오며 축제를 벌이고 있다. 다음 천년도 아니 지구가 소멸되는 날까지 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곳은 아마 왕의 꿈에 신의 모습이 현현한 곳일 수도 있다.

 

사원에 들어서면 먼저 고마테스와라 석상의 두 발이 보인다. 중앙에 고마테슈와라상이 있고 외고가 회랑에 23명의 티르칸타라상을 배열하여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티르칸타라가 1대 티르칸타라인 고마테스와라를 호위하는 형국이다. 티르칸타라상은 모두 검은 돌을 조각한 입상으로 전신형 광배를 갖추고 있는데 경직된 직립형으로 나신이다. 자이나교에서는 창시자 마하비르 이전에도 23명의 티르탄카라(조사)가 있었는데, 마하비르는 기원전 6세기의 역사적 인물로 과거조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부터 삼천년 전에 이미 자이나교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고마테슈와라상의 얼굴을 렌즈를 이용하여 당겨보았다. 평범한 젊은 용사의모습으로 곱슬머리에 크게 뜬 눈과 꽉 다문 입술이 인상적이며, 양쪽 귀는 길게 늘어져 고매한 인격을 나타내고 있다. 넓은어깨 아래 긴 팔과 미끈한 신체를 굳건한 두 다리가 지탱하고 있다. 다리와 양 팔에는 덩굴이 감아 오르며 그가 나무보다 더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고행하며 명상에 잠겨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정글 속에 남겨진 카몹디아의 인공사원은 천연의 나무뿌리에 묻혀있지만 이곳의 석상을 살아있는 신의 바디에 덩굴을 새겨 그의 위대함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그는 자인교의 전설에 등장하는 바후발리를 모델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형들과의 골육상쟁 끝에 왕으로 등극하여 훗날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자인교의 1대 타르탄카라가 되었다고 전한다. 고마테스와라라는 초대 티르탄카라인 아디나타의 아들이다.

 

신상이 나신인 것은 극도의 불살생 교리를 보여주고 있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살생을 막기 위함이다. 교도들은 농업을 금하고 대부분 상업에 종사하는데 농사짓는 해위는 벌레 한 마리의 목숨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인교도를 백의파와 공의파로 구분하는데 공의파는 지금도 평생 온몸의 털을 깎지 않고 나체로 생활하며 수행한다. 현재 약 삼천만 명에 달하는 인도의 자인교도들은 대부분 서북지역에 거주하며 상업으로 일군 부를 누리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불교와 같이 태동한 자이나교는 불교보다 엄격한 교리를 가지고 있지만, 인도 땅에 불교가 소멸한 지금까지도 교세를 유지하고 있다.

 

 

 

고마테스와라상 발아래 두 부부가 사제의 지도 아래 의례를 갖추고 있다. 젊은 두 부부는 부유해 보이며 그들의 집전은 30분을 넘기며 계속되고 있다. 아마 그들은 이 사원의 큰 시주자로 사제도 정성을 다하여 접전하고 있다. 고마테스와라의 발등은 오랜 세월동안 세례의식의 흔적이 보이고 색깔은 검게 변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고 있는 바로 인도의 모습이다.

 

하산 길에 바라본 마을의 모습은 평온하고 아름답다.

 

[제14화] 새로운 양식의 창조 2
[제16화] 어떤 우주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