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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17화] 바다미, 파타다칼, 아이홀 작성자 김성훈
파일 조회수 885
[제17화] 바다미, 파타다칼, 아이홀
 

-11. 바다미, 파타다칼, 아이홀- 찰루키야 왕조의 새로운 시도; 석굴에서 평지로

 

 

바다미Badami는 이번 남인도 여정에서 유일한 석굴사원으로 조성 시대가 가장 앞설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인상 깊은 유적이다. 기원 전 후의 서부데칸지역 석굴을 대부분 답사 하였지만 이곳 힌두석굴에서 받은 감동은 그들을 능가하고 있다. 붉은 화성암에서 당장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신들의 모티프는 규모와 역동성 그리고 제제의 다양성 측면에서 힌두교조각의 최고봉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 석굴이 조성된 6세기는 힌두교가 굽타왕조로부터 공인되며 불교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펼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데칸지역의 엘로라 카일라사타 석굴이나 오랑가버드 힌두석굴보다 조성시기가 이 백년이상 빠르며 유명한 뭄마이 앞바다의 엘레판타 조성시기보다도 앞선다.

힌두교는 종교의 범위를 초월한 개념으로 그 뿌리는 인더스 문명과 토착신앙 그리고 아리아인의 베다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초창기 유물이나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진정한 힌두교의 형성은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등 서사시가 성립되기 시작한 기원전 2세기 무렵이며, 굽타가 시작된 4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현재와 같은 힌두교의 틀이 형성된 것으로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힌두교의 조상활동 역시 쿠샨후기 마투라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4세기에 등장한 굽타시기에 본격적인 힌두교의 궤범에 따른 고전양식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고 본다. 힌두교의 뿌리는 오래되었으나 종교로서의 기능은 불교와 자이나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며 불상의 등장에 따라 힌두교의 의인화된 각종 신상이 유행하였다.

힌두교 조상의 대표적인 초기작으로는 찬드라굽타가 봉헌하였다는 명문(401/402)이 있는 인도중부 지역의 우다이기리 석굴이 있다. 이 석굴의 5굴에 바라하의 화신상과 4굴 에카무카 링가상 그리고 6굴의 비슈누, 두르가, 가네샤와 각종 수호신 등이 조각되어 굽타초기에 이미 힌두교의 만신과 그 스토리가 완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시바와 비슈누, 브라만 등이 혼재되어 표현되어 교리적인 영향으로 보이며 이곳 조각의 수준은 굽타기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데칸서부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초기 찰루키야 왕조는 풀라케신 1(500-556)가 이곳 바다미에 수도를 정하고 손자인 폴라케신 2(608-642)때에는 데칸지역을 넘어 대국으로 성장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힌두유적으로 바다미, 파타다칼, 아이홀 등이 있는데 미술과 건축은 굽타의 영향이 강한 서인도의 석굴과 남인도의 팔라바 왕조의 특색이 혼재하고 있다.

바다미는 까르나타카주의 북부에 위치하여 데칸고원 서부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 이곳은 석굴사원외에 평지와 동쪽 산위에 남아있는 석조사원과 후대의 이슬람 묘역 등이 즐비하여 고도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거대한 인공호수를 끼고 남쪽 바위산 언덕에 개굴된 석굴사원은 1굴은 시바, 2굴과 3굴은 비슈누 그리고 4굴은 자이나를 위한 석굴인데 가장 큰 3굴의 전랑부에 키르티비르만 1세 치하12(578)에 왕의 동생 만가레샤에 의해 건립되었다는 명문이 있다. 1, 2굴은 3굴보다 빠른 550년경에 개착되었으며 4굴은 가장 늦은 시기에 개착된 걸로 보고 있다.

바다미석굴의 규모는 비록 엘로라 석굴보다 작지만 본격적인 힌두석굴 중 가장 오래된 석굴에 속하며 석굴내부의 뛰어난 부조상으로 유명하다. 1굴의 ‘춤추는 시바상’과 ‘하리하라’(시바와 비슈누의 합체상), ‘양성구유의 시바상’ 등 충만한 생명력과 힘찬 율동이 압권으로 초기 힌두미술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측 작은 감실에 ‘물소 마신을 살해하는 두르가’, ‘카르티케야’, ‘가네샤’ 등 조각도 모두 훌륭한 작품의 품격을 보여준다. 2굴에는 비슈누의 ‘가나의 화신’과 ‘바라하의 화신’이 있고 천정에 ‘크리슈나의 설화’, ‘유해교반’, ‘간다르바’ 등이 다양한 문양과 함께 빼곡히 조각되어 있다.

3굴은 가장 크고 화려하며 다른 굴과 마찬가지로 전랑과 방형의 큰 본당으로 구성되었으며 안벽 중앙에 작은 감실을 마련하고 있다. 전랑과 본당에 ‘4개의 팔을 가진 비슈뉴상’, ‘가나의 화신’, ‘용위의 비슈누신’, ‘바라하의 화신’, ‘나라싱하의 화신’, ‘하리하라’의 조각 등이 모두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본격적으로 석굴을 향하여 계단을 오르자 좌측에는 거대한 인공 저수조에 푸른 물이 넘실대고 우측에 깎아지른 절벽이 전개된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상쾌하였다. 멀리 호수건너 붉은 바위산 주변에 아담한 석조사원들이 눈에 띤다. 이 고대의 힌두교사원들은 황량한 바위산과 동화되어 그곳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무례하지 않은 인간의 흔적에 감사할 따름이다. 저수조아래 펼쳐진 고도 바다미는 중세 인도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로 하얀색조의 민가사이에 고대 힌두사원과 이슬람 건축물이 혼재되어 아름답다. 인간이 머무르는 곳과 신당들이 경쟁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멈춘 도시를 대하는 듯 아련한 느낌을 주고 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은 정막의 도시다. 나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절벽아래 횡으로 긴 방형석굴이 눈에 띤다. 5개의 사각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이 석굴사원은 가까이서 바라보니 의외로 규모가 큰 편이다. 기둥아래 기단부에 역사무리가 빼곡히 조각되고 우측 벽감에 거대한 부조상이 눈에 띈다. 위대한 16개의 팔을 소유한 춤추는 시바상으로 사각단상위에서 춤추는 시바의 몸은 완벽한 균형미와 운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신체는 터질듯 생명력이 풍부하고 각종 지물을 수지한 팔은 자유롭고 강건한 두발의 모티프는 율동감을 더하고 있다. 신이 인간을 위하여 자연에서 현현하는 위대한 장면이다. 다시 뒤로 물러서며 조각을 응시하였다. 붉은 암석에 환조에 가까운 고부조의 신체는 피가 도는 듯 숨이 막힌다. 작품은 설치된 장소가 중요하다. 하늘도 중요하며 아득하고 거친 절벽과 이곳을 스치는 원색의 사리를 걸친 인도여인도 작품의 일부다. 나는 1500년을 손상되지 않고 신도의 숭배를 받아온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힌두조각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한순간 떨쳐내고 있다.

석굴내부는 전랑과 본당으로 나뉘고 본당가운데 시바의 탈것인 난디가 성실을 향하여 앉아 있다. 난디는 항상 주인을 향하여 앉아 있는데 주인을 보호하는 역할보다 언제든지 주인이 부르면 달려갈 태세다.

 

 

 

차갑지만 엄숙한 신을 위한 사당이다. 사각기둥 상부의 각종문양은 절제되고 세련된 길상문과 정령들의 모티프가 아름답다. 이곳의 마신을 죽이는 두르가 여신상은 더욱 극적인데, 두르가의 오른발로 소로 분장한 마신의 머리를 짓밟고 왼손으론 꼬리를 휘어잡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두르가여신의 거친 행동과 달리 그녀의 몸은 매우 여성적이다. 고대인의 성적표현은 단순한 쎅시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각종 말초적 쾌락에 익숙한 현대인으론 이해하는데 상당한 수양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 작품은 마하발리뿌람의 두르가여신상과 다른 원시적인 작품으로 같은 소재의 도상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굴은 비슈누신을 위한 석굴로 1굴과 같은 형식이나 규모가 약간 작다. 고대인들은 왜 석굴사원에 집착하였을까? 평지의 사원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 고된 작업을 감내케 하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신의 거처는 수미산이라 생각했으며 그곳에 신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리고 거대한 위압감을 주는 바위산을 신의 형상으로 여기며 그들에게는 경외와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곳에 굴을 뚫고 신을 모시는 행위는 자궁사상의 표상으로 생명의 탄생과 같은 인간이 알 수 없는 현상에 신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자궁 깊은 곳에 모신 링가는 드디어 합일에 만족하며 민초에게 성령의 은총을 베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탑신앙도 링가사상과 연결될 수 있으며 탑에 모신 부처님의 사리는 출발지로 회귀하길 염원해서일까?

전랑 좌우측 외면에는 높은 관을 쓴 비슈누신의 진신을 조각하였다. 두 상은 입상으로 비슈누는 눈을 내려감은 인자하고 따뜻한 모습이다. 곁에는 그의 배우자 파르바티가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전랑에 들어서자 좌측에 바라하의 화신상이 보이고 우측에는 가나의 화신상이 보인다.

 

       

 

가나는 왼발을 높이 쳐들어 세계를 구획하고 바하라는 홍수로 물속에 잠긴 대지를 구하는 장면으로 정녕 비슈누신의 천지창조의 역사를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작품들 역시 모델링이 훌륭하고 동세가 적극적이다. 가나의 중심은 신도들의 손을 타 까맣게 변색하여 윤이 흐르고 있다. 작가와 관객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힌두의 신은 인간에게 원초의 죄를 심문하지 않고 스스로 역사하며 그 소임에 만족한다. 비슈누의 화신 중 바라하와 가나는 초기 화신에 속하며 8세기경에야 10신의 화신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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